푸른 벼랑 아래
시퍼렇게 혀를 날름거리는
네 앞에서 몸을 던지고 싶다.
채 피지도 못한
가을, 벼 이삭 그늘 속에서
잡초로 무성하게 살아온
너는,
석삼년 가뭄으로
녹슬고 삭아버린 논밭에
몸서리치며 오줌 한 번 지리고
가슴팍에 박아 놓은 돌맹이 꺼내들어
개배미 언덕길을 휘우듬하게 오른다.
평생 논두렁에서 살과 뼈를 심었는데,
하늘은 말라붙고
무성하던 머리털만 뭉텅뭉텅 빠졌다
우라질, 염병할 소리를
심장 깊숙이 되새김질하며
가슴 한복판에서
대물림 논밭에서
뭉게구름은 하루 종일
무릎 끓고 소리 없이 울어댄다.
푸른 벼랑 아래
겨우겨우 남아 있는 살들을 모아
앙상한 뼈 주렁주렁 매달고
차라리, 네 앞에서 몸을 던지고 싶다.
=시 : 신배섭(문학박사․시인)
=그림: 박호창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