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배섭의세상읽기
이름을 바로 세우자
icon 신배섭 전문위원
icon 2009-07-09 14:41:26  |   icon 조회: 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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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 강신영 '나무 고기'
=사진 : <이천뉴스>



지금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법 문제의 해법을 놓고 대립중이다. 문제의 핵심은 아마도 ‘노동유연성의 확대냐, 아니면 노동안정성의 확보냐’일 것이다. 진정 이 문제에 대해 포지티브(positive)한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얼마 전 연암(燕巖)의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다시 읽었다. 그 가운데 <호질(虎叱)>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중에 밤이 되자 호랑이가 부하들과 저녁거리를 의논하고 있었다. 결국 맛 좋은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결정하고 호랑이들이 마을로 내려올 때, 세상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유학자 북곽(北郭) 선생은, 절개로 이름 높은 과부 동리자(東里子) 집에서 밀회하고 있었다. 과부에게는 성이 각각 다른 아들이 다섯이나 있었는데, 이들이 엿들으니 북곽 선생이었다. 필시 이는 여우의 둔갑이라 믿고 아들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뛰어드니, 북곽 선생은 황급히 도망치다 똥구렁에 빠졌다. 겨우 기어 나오니, 호랑이가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첨을 늘어놓자, 호랑이는 지저분한 인간이라며 그를 크게 꾸짖고 가버렸다. 날이 새어 북곽 선생을 발견한 농부들이 까닭을 물으니, 그는 하늘과 땅을 거론하며 아직도 청렴한 척 가식을 떤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공자(孔子)가 평생을 부르짖은‘정명 사상(正名思想)’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명’은 정치․윤리적 개념으로서, 춘추전국시대 극도로 혼란한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인간성 회복과 정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주장했던 사상이다. ‘정(正)’은 “바로 잡다.”는 의미이며,‘명(名)’은“스스로 자기를 드러내 알린다.”는 의미이다. 달도 없는 깜깜한 밤(夕)에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소리를 내어(口) 자기를 나타내고 이로써 상대방이 자기를 알아볼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어느 날 자로(子路)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때 공자는“반드시 명을 바로 잡아야겠다(正名).”고 하였으며, “정치란 바로 잡는 것이다(政者正也).”라고 하여 정치에 있어서 정명(正名)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또한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정치에 대해서 물었을 때,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고 하여 명분과 그에 대응하는 덕이 일치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또한 보다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서 분야별로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며 살아가고 있다. 공자가 말한‘정명사상’은 사람은 사회적 지위에 합당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장관․부모․자식 등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이름에 합당하는 지위를 지니고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은 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에 적합하도록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이름에 적합한 처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삶이란 역할 교체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회사에 있으면 임직원으로, 부모 앞에서는 자식으로, 형 앞에서는 동생으로, 학교에 가면 학생으로, 친구들과 있으면 친구로서의 역할을 하면 된다. 즉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된다. 임직원은 노동자를,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부모는 자식을, 형은 동생을, 교사는 학생을 생각한다면 혼란과 갈등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정명’은‘위로부터의 개혁’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 속담에“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문제들은 윗사람이 솔선수범하여 모범을 보일 때, 그 해결책이 모색되었다.

문득,『논어』‘자로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백성들이 행해야 할 것을 자신이 먼저 솔선하면 윗사람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이 부지런히 애써하면 백성들이 비록 수고롭더라도 윗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凡民之行 以身先之 則不令而行 凡民之事 以身勞之 則雖勤不怨).”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상황을 보면, 현실과 이상 사이에는 늘 괴리(乖離)가 있는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북곽 선생이 떠오른다.(신배섭, 문학박사․시인)
2009-07-09 14: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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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찍사 2009-07-19 11:04:39
몇번을 읽고서야 어렴풋이 알 듯 합니다. 지도자의 솔선수범... 한낱 헛된 바램일지 몰라도 다시한번 기대해 봅니다.